기적의 메달
뤼 뒤 박 140번지, 파리
파리 애덕의 딸회 수녀원 경당에서 수련 수녀에게 성모가 나타나 메달을 만들라고 했습니다. 이 메달은 콜레라 유행 속에 퍼지며 ‘기적의 메달’로 불렸고, 근대 성모 발현 시대의 문을 열었습니다.
- 기간
- 1830년 7월~12월
- 목격자
- 성 카타리나 라부레 (24세, 수련 수녀)
- 발현 횟수
- 3회
- 칭호
- 기적의 메달의 성모,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
- 축일
- 11월 27일
- 교회의 판단
- 1832년 대주교가 메달 제작 인가, 1836년 교구 조사에서 긍정적 결론
시대 배경
1789년 혁명 이후 프랑스 교회는 큰 타격을 입었고, 1830년 7월 혁명으로 다시 반교회 폭동이 일어났습니다.
무슨 일이 있었나
- 1830년 4월수련원에 들어온 카타리나는 성 빈첸시오 드 폴의 유해 이전 행사 기간에 성인의 심장을 환시로 보는 등 신비 체험을 했습니다.
- 7월 18일 밤 11시 반‘수녀님, 일어나세요’ 하고 부르는 네다섯 살쯤의 빛나는 아이를 따라 경당으로 갔습니다. 촛불이 모두 켜져 있었습니다.
- 7월 19일 자정성모가 제대 곁 신부님 의자에 앉자, 카타리나는 그 무릎에 두 손을 얹고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. 성모는 프랑스에 닥칠 재난과 그녀에게 맡길 사명을 이야기했습니다.
- 7월 27~29일성모의 예고대로 7월 혁명이 일어나 샤를 10세가 물러났습니다.
- 11월 27일 저녁 5시 반묵상 시간에 성모가 지구 위에 서서 금빛 구슬을 들고 기도하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. 이어 구슬이 사라지고, 반지 낀 손가락에서 눈부신 빛이 쏟아졌습니다.
- 같은 환시성모 둘레에 타원형으로 글귀가 새겨졌고, 환시가 돌아서며 메달 뒷면이 보였습니다. M자 위의 십자가, 가시관을 두른 예수 성심과 칼에 찔린 성모 성심, 둘레의 열두 별이었습니다.
- 12월마지막 발현에서 같은 요청이 되풀이되었습니다. 카타리나는 고해 신부 알라델 신부에게만 이 일을 알렸습니다.
- 1832년 6월2년의 망설임 끝에 첫 메달 1500개가 만들어졌고, 콜레라가 휩쓸던 파리에서 치유 소식과 함께 퍼져 ‘기적의 메달’로 불렸습니다.
전해진 말씀8
표징과 기적
1832년 파리에 콜레라가 퍼질 때 나누어 준 메달과 함께 치유와 개종 이야기가 잇따르며 몇 년 만에 수백만 개가 퍼졌습니다. 카타리나의 시신은 부패하지 않은 채 경당에 모셔져 있습니다.
교회의 판단
- 1832년파리 대주교 드 켈랑이 메달 제작을 인가했습니다.
- 1836년교구 조사에서 긍정적인 결론이 났습니다.
- 1854년메달로 퍼진 신심이 원죄 없는 잉태 교의 선포의 배경이 되었습니다.
- 1947년카타리나가 성인품에 올랐습니다.
오늘의 성지
카타리나는 187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이 목격자라는 사실을 숨긴 채 양로원에서 봉사했습니다. 파리 중심가의 경당에는 매년 200만 명 가까이 찾아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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