루르드의 성모
마사비엘 동굴, 프랑스 루르드
가난한 방앗간 집 딸 베르나데트가 강가 동굴에서 흰옷의 부인을 18번 만났습니다. 부인은 샘을 파게 하고, 마지막에 자신이 ‘원죄 없는 잉태’라고 밝혔습니다. 세계에서 가장 많은 치유가 보고된 성지입니다.
- 기간
- 1858년 2월 11일~7월 16일
- 목격자
- 성 베르나데트 수비루 (14세)
- 발현 횟수
- 18회
- 칭호
- 루르드의 성모, 원죄 없는 잉태
- 축일
- 2월 11일 (세계 병자의 날)
- 교회의 판단
- 1862년 1월 18일 타르브 교구장 승인
시대 배경
베르나데트의 가족은 방앗간이 망한 뒤 옛 감옥 독방에서 살 만큼 가난했습니다. 천식을 앓던 그녀는 글을 몰랐고 교리 공부도 늦었습니다. 4년 전인 1854년 교황 비오 9세가 원죄 없는 잉태 교의를 선포했습니다.
무슨 일이 있었나
- 2월 11일 · 1차여동생 투아네트, 친구 잔 아바디와 땔감을 줍던 베르나데트가 개울을 건너려고 양말을 벗다가 바람 소리를 듣고 동굴을 올려다보았습니다. 흰옷에 파란 띠를 두르고 두 발에 노란 장미가 달린 젊은 부인이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.
- 2월 14일 · 2차베르나데트가 성수를 뿌리며 하느님께로부터 왔다면 머물러 달라고 하자, 부인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.
- 2월 18일 · 3차부인이 처음으로 말을 했습니다. 이름을 써 달라는 청은 거절하고, 15일 동안 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.
- 2월 19일~3월 4일보름 동안 날마다 동굴을 찾았고, 22일과 26일에는 부인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. 구경꾼이 수십 명에서 수천 명으로 늘었습니다.
- 2월 24일 · 8차부인은 회개를 세 번 외치며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. 베르나데트는 무릎으로 기어 땅에 입을 맞췄습니다.
- 2월 25일 · 9차부인의 말에 따라 베르나데트가 동굴 안쪽 흙을 파고 진흙물을 마시자 사람들은 그녀가 미쳤다고 비웃었습니다. 그날 오후부터 맑은 샘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.
- 3월 1일 · 12차마비된 팔을 샘물에 담근 카트린 라타피가 곧바로 손가락을 움직였습니다. 훗날 인정된 첫 번째 치유 기적입니다.
- 3월 2일 · 13차부인은 사제들에게 경당을 짓고 행렬로 오라고 전하라 했습니다. 페라말 신부는 부인의 이름부터 알아 오라고 했습니다.
- 3월 25일 · 16차성모 영보 대축일, 베르나데트가 네 번 이름을 묻자 부인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‘원죄 없는 잉태’라고 답했습니다. 베르나데트는 뜻을 몰라 신부에게 가는 길 내내 그 말을 되뇌었습니다.
- 4월 7일 · 17차황홀경에 빠진 베르나데트의 손가락 사이로 촛불이 15분 넘게 타올랐지만, 의사 두주가 확인한 결과 화상 자국이 없었습니다.
- 7월 16일 · 18차가르멜 산의 성모 축일, 동굴이 판자로 막혀 강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가운데 마지막 발현이 있었습니다. 베르나데트는 부인이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고 말했습니다.
전해진 말씀9
표징과 기적
베르나데트가 판 샘은 지금 하루 수만 리터가 흐릅니다. 루르드 의료국은 7천여 건의 치유 보고를 조사했고, 교회는 이 가운데 70여 건을 기적으로 인정했습니다. 4월 7일에는 촛불이 손을 감쌌는데도 화상을 입지 않았습니다.
교회의 판단
- 1858년 11월타르브 교구장이 조사 위원회를 꾸렸습니다.
- 1862년 1월 18일베르트랑 세베르 로랑스 주교가 발현이 참되다고 선언했습니다.
- 1883년치유를 의학적으로 검증하는 의료국이 세워졌습니다.
- 1933년베르나데트가 성인품에 올랐습니다.
오늘의 성지
베르나데트는 느베르 애덕 수녀회에 들어가 1879년 35세로 세상을 떠났고, 시신은 부패하지 않은 채 모셔져 있습니다. 루르드는 매년 수백만 명이 찾으며, 특히 병자 순례로 유명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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