과달루페의 성모
테페야크 언덕, 멕시코시티
스페인 정복 10년 뒤, 원주민 후안 디에고에게 성모가 원주민의 모습과 언어로 나타났습니다. 망토에 새겨진 성모상은 지금도 남아 있으며,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서 대규모 개종이 이어졌습니다.
- 기간
- 1531년 12월 9~12일
- 목격자
- 성 후안 디에고 쿠아우틀라토아친 (57세)
- 발현 횟수
- 후안 디에고에게 4회, 삼촌에게 1회
- 칭호
- 과달루페의 성모
- 축일
- 12월 12일
- 교회의 판단
- 1555년 대주교가 공경 지지, 1666년 정식 조사
시대 배경
1521년 아스텍 제국이 스페인에 정복된 뒤, 원주민들은 전쟁과 전염병, 착취로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. 선교사들의 노력에도 개종은 더디게 진행되었습니다.
무슨 일이 있었나
- 12월 9일 토요일 새벽틀라텔롤코 성당 미사에 가던 후안 디에고가 테페야크 언덕 아래에서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고, 언덕 위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따라 올라갔습니다. 해처럼 빛나는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서 있었습니다.
- 같은 날 아침여인은 자신이 참되신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라고 밝히고, 이곳에 성당을 지어 달라고 주교에게 전하라고 했습니다. 후안 디에고는 곧장 주교관으로 갔지만, 수마라가 주교는 그의 말을 반신반의했습니다.
- 12월 9일 저녁언덕으로 돌아온 후안 디에고는 자기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 말고 신분 높은 사람을 보내 달라고 청했습니다. 성모는 바로 그가 이 일을 해 주기를 바란다며 다음 날 다시 가라고 했습니다.
- 12월 10일 일요일주교는 여러 질문을 한 뒤 표징을 가져오라고 했고, 몰래 하인들을 보내 뒤를 밟게 했습니다. 하인들은 언덕 근처에서 그를 놓쳤습니다. 성모는 내일 표징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.
- 12월 11일 월요일삼촌 후안 베르나르디노가 열병으로 위독해져, 후안 디에고는 약속한 날 언덕에 가지 못했습니다.
- 12월 12일 화요일 새벽임종 사제를 부르러 가던 그는 성모를 피해 언덕 옆길로 돌아갔지만, 성모가 그 길로 내려와 그를 맞았습니다. 성모는 삼촌이 이미 나았다고 안심시켰습니다.
- 같은 날 아침성모의 말대로 서리가 내린 한겨울 언덕 꼭대기에 올라가자, 그 지방에 없던 카스티야 장미가 가득 피어 있었습니다. 성모는 꽃을 손수 매만져 망토(틸마)에 담아 주었습니다.
- 같은 날 주교관후안 디에고가 주교 앞에서 틸마를 펼치자 장미가 쏟아졌고, 틸마에는 성모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습니다. 주교와 곁에 있던 이들이 무릎을 꿇었습니다.
- 12월 12일, 삼촌의 집같은 시각 삼촌에게도 성모가 나타나 병을 낫게 하고, 자신의 모습을 ‘완전하신 동정녀 과달루페의 성 마리아’라 부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.
- 12월 26일틸마는 언덕 아래 급히 지은 작은 경당으로 옮겨졌고, 후안 디에고는 그 곁에 살며 평생 경당을 지켰습니다.
전해진 말씀13
표징과 기적
선인장 섬유로 짠 틸마는 보통 20~30년이면 삭지만, 성모상이 새겨진 틸마는 490여 년 동안 보존되고 있습니다. 1921년 성당 폭탄 테러 때도 틸마는 손상되지 않았습니다.
교회의 판단
- 1555년알론소 데 몬투파르 대주교가 신심을 지지했습니다.
- 1666년교회가 증인들을 불러 정식 조사(법적 증언 기록)를 진행했습니다.
- 1754년교황 베네딕토 14세가 축일과 고유 미사를 승인했습니다.
- 2002년후안 디에고가 성인품에 올랐습니다.
오늘의 성지
과달루페 대성당은 매년 2000만 명 안팎이 찾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순례자가 모이는 가톨릭 성지입니다. 과달루페의 성모는 아메리카 대륙의 수호성인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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